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해병대 (문단 편집) ===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해병대사령부]] 해체 및 재창설 === [[대한민국 국군]]의 [[월남파병]]이 끝난 후 군조직 개편의 목적으로 '''1973년 10월 10일에 해병대사령부가 해체'''되었다.[[https://www.joongang.co.kr/article/1357250|#]] 그래서 당시엔 '해병대'가 아니라 '해군 해병사단', '해군 상륙사단' 등의 명칭으로 불렸다.[* 예하 부대들이 와해되어 뿔뿔이 흩어졌다는게 아니라 사령부가 해체되어 완전히 해군 관할로 넘어간 것이기 때문에 병력과 전력 자체는 그대로 있었다. 사령부가 해체당한 14년의 기간 동안은 해병대가 영미권식의 Marine Corps가 아닌 유럽식 해군육전대 체제였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해병대사령관]]은 [[대한민국 해군|해군]] 제2참모차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그에 맞춰 계급도 대장에서 중장으로 격하당했다. 병과도 해군보병, 해군포병, 해군기갑 등으로 서류상 등재된 명칭이 바뀌었고, 병들은 해상병(수병)/상륙병(해병)으로 구분됐다.[* [[박정희 정부]]는 지상군 병력인 해병대를 축소한 대신 [[대한민국 해군|해군]]에는 많이 투자했는데, 당시에는 없는 형편에 [[기어링급 구축함]]을 도입하여 최초로 [[미사일]] 운용 함정을 들여오기도 했으며, 이 기어링급은 1990년대까지 해군 주력함 중 하나였고 나중에 KDX로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및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으로 대체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해군|해군]]은 [[전두환]], [[노태우]] 두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시기가 끝난 뒤인 [[문민 정부]]때부터 [[KDX]] 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참여정부]] 시기에 이르기까지 [[광개토대왕급 구축함]] 및 [[충무공이순신급 구축함]], 그리고 [[이지스함]]인 [[세종대왕급 구축함]] 획득에 성공했다.] 1987년에 다시 해병대사령부가 부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시 해군에선 해병대사령부의 재창설을 격하게 반대했고, 설령 재창설을 시키더라도 '해군상륙군사령부'라는 명칭을 써야한다고 주장하면서 '해병대'라는 독자적인 기존 명칭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반대하며 해병대에게서 해군 딱지를 완전히 떼어내고 기존의 해병대 명칭을 허락하며 사령부를 부활시켰다. 해병대사령부 재창설을 설득하여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승낙까지 받아낸 인물은 해병대 성병문 중장[* 당시 직책명칭은 해군제2참모차장]이었는데, 해병대 재창설을 반대하는 [[대한민국 해군본부|해군본부]]의 눈을 피해 [[국군보안사령관]],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국방부장관]] 등과 접촉하여 설득한 끝에, 드디어 '''1986년''' 8월에 [[전두환]]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으로부터 재창설 승락을 받아낸다. 그러나 재창설을 위한 구체적인 실무작업에 착수한 뒤 사령부 및 부대의 명칭, 권한 범위, 명령/지휘체제, 예산 등의 문제를 놓고 해군과 해병대간에 이견이 심해서 관련 법령 내용과 최종안을 확정 짓지 못하고 무려 1년여간이나 해군 - 해병대 간 알력싸움 줄다리기를 한 끝에 1987년 10월경에 모든 사안이 확정되었고 같은 해인 '''1987년 11월 1일'''에 공식적으로 재창설된다.[* 이런 해병대사령부 부활 당시의 상세한 뒷이야기는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159&pn=1&num=13432|여기에서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